서울

오늘의 서울을 개성서 서울로 천도하기로 결정을 한 것은 조선조의 태조였다. 그때가 1395년이었으니 이제는 600년도 지난 옛날 얘기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가 이곳을 중심으로 도읍을 두고 나라를 세웠고 신라도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이곳에 한양군을 두었었다. 이토록 서울은 한반도에서 나라가 설 때마다 수도의 터전으로 또는 주요 지방 도읍으로 물망에 오르곤 했다. 그것은 서울이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데다 그 당시의 풍수지리설이나 음양오행설 또는 도참설 등으로 볼 때, 흔히 말하는 명당자리였기 때문이리라. 또한 지형으로만 보아도 북으로부터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북악산, 인왕산, 아차산 등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이고 남으로는 우리겨레의 젖줄이었던 한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어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였다. 그러니 나라와 국왕을 보호하는데에도 자연이 이루어 놓은 요새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어떤가. 강남이 개발되어 한강은 서울의 한 복판을 흐르게 되었으며 주변의 수려한 산들은 시내 버스나 전철로도 오 갈 수 있는 자연공원이 되었다. 자연의 요새가 시민들의 레저를 위한 또는 심신단련을 위한 수련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지구상에 인공적으로 잘 가꾸어진 대도시는 많겠으나 우리 서울과 같이 혜택받은 자연환경을 물려받은 도시는 드물겠다.

 

참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그 당시의 여러 ‘설’까지 연구를 거듭해서 둘도 없는 명당자리에 서울의 터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환경은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인구를 유인한 것이나 아닌지! 금세기 초만 하더라도 인구가 불과 25만 정도의 전근대적인 도읍이었던 서울이 이제는 1,100만에 이르는 거대도시로 세계 5대 도시중의 하나가 되었다니 놀랄만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과밀에서 오는 갖가지 고민 꺼리도 산적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주거환경, 교통, 대기나 수질오염 등의 문제는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말끔히 가시는 날 우리의 서울도 명당 터에 걸맞은 꿈의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말에는 또 어떤가. 6·25사변 이후의 국난이라는 IMF사태까지 겹쳤다. 통계적인 수치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거리 곳곳, 공원, 지하철역 등에서 방황하는 실업자는 늘어만 갔으며 그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은 골목마다 들어서는 노점이나 포장마차 등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는 굳이 전후 우리의 리얼리즘 사진가들이나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 때의 F.S.A. 사진가 들과 같은 어려운 계층만을 부각시켜 어떠한 캠페인을 시도할 생각은 없었으며, 오로지 보편타당한 세기말의 서울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리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사태 같은 것은 당연히 매스컴이 기록할 상황이라 나의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그리고 이 IMF문제는 우리 겨레 특유의 근면성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뿌리 깊은 면학에의 열의가 있기에 머지 않은 장래에 해소시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고 있다.

 

1999년 6월 관악산 기슭에서